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읽어보고 있노라면, 여행의 향수가 물밀듯 밀려온다. 여행을 가보았든, 가보지 않았든지 상관없다. 여행이 주는 감성과 낭만을 오로지 느낄 있다면 그 누구든 자신만의 '여행의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여행을 왜 떠나는지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보도록 하겠다.
상처받은 현실을 치유한다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살다 보면 우리는 여러 관계와 구조 속에서 상처를 받게 된다. 그 관계와 구조가 형성한 수없이 많은 상황들 속에서 우리 모두가 각각의 변수를 대처할 수 없으니,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스트레스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특히나 스트레스에 취약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불안정한 상황들 안에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챙기기 힘들어지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괜스레 평소보다 더 예민해져서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든가 더욱 감정적이게 된다든가 건강이 악화되기도 한다. 이 정도까지 왔다면 무언가를 계속하기에 적합한 상태는 아닌 것이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 잠시 쉬는 것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당분간 휴식을 취하는 것을 책임감이 없다거나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행동과 인품을 판단하기에는 너무나도 주관적이고 상대적이지만, 적어도 한 개인의 기준에서 건강을 버려가면서까지 무언가를 유지하는 행동이 무책임하다고 볼 수는 없을테니 쉴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그리고 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최대한 양해를 구하고 자기 자신을 구하는 방법을 택하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업무와 인간관계에 치이던 직장인 시절, 주말을 껴서 1일만 연차를 내어 2박 3일이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새로운 세계에 다녀온 듯한 기분에 힘든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겨났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잠이 필요할 수도 있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쩌면 해외여행도 여행을 떠날 에너지가 남아있어야 갈 수 있으니,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수준은 분명 다르다.
만약 여행을 갈 수 있다면야 적극적으로 가라고 추천하는 이유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것이 사고를 환기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잠시 벗어나 있지 않고, 아예 벗어나 있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잠시라도 벗어나는 것이 최적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으로부터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황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주관성만 배제하더라도 해결법이 더 쉽게 보이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여행을 떠나서까지 힘든 일을 떠올리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릿속은 힘든 것으로부터 오랫동안 시달릴수록 습관적으로 은연중에 그것을 생각할 수 있기에, 여행이라는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면 풀리지 않던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거나, 강하게 얽매였던 것의 고리가 느슨하게 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한 방향으로 사고를 하게 된다. 애초에 힘듦 속에서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나를 쉬어주기 위함이고, 나를 쉬어주고자 한다는 것은 나 또는 나 이외의 상황을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방향으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끌고자 함을 의미한다.
새로움을 경험함으로써 다름을 배운다
여행 중의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한다. 여행을 하면서 개인마다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것들은 다를테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이 공통적이니 비슷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방문하는 국가의 국민들의 행동이다. 문화적 요소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고, 정말 철저하게 개인의 성향일 수도 있어 바라보는 데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국가의 국민들 다수가 동일하게 행하는 것이라면 눈여겨 볼만하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에서는 보편적으로 당연하다고 느끼고 행하는 행동이 아니므로 비교가 가능하다.
사회문화적 행동 뿐이랴, 건축양식도 음식도 기후도 다르다. 길거리에 피어난 꽃과 나무도 처음 보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들 국가에서 더 많은 비중으로 유통되는 자동차, 전자기기, 패션제품들도 있다. 여러모로 다양한 면모들이 지금까지 보고 들어왔던 것과는 다르다. 물론 어릴 적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거주한 적이 있거나 장기간 체류하였다면 새로움은 덜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 인구 중에서 전문여행가가 아니고서야 여러 국가들의 모습을 속속들이 알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누려왔던 것과 다른 모습들을 보며 나와 다른 것들을 이해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다름에 대한 이해'라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해볼 수도 있다. 여행 중의 우리는 단번에 나와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다른 것을 보며, 되려 거부감이 들거나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혹은 그것을 보고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추후에는 낯설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직접 나와 다른 것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다 보면 다름에 대한 어색함은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다름을 직접 경험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한국에서의 힘듦과 어려움의 문제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한국에서 겪고 있던 문제가 실상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단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가 떠난 여행지에서 새로움을 경험하고 어느 정도 또는 어떻게든 변화된 사고방식으로 기존의 문제를 검토하다보니 다른 결말이 도출된 것이다. 이 결말은 여행지 한정일수도 있기에 일시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할 범주를 확장한 것임을 있지 말아야 한다.
나는 주변에게 되도록이면 많은 것을 다양하게 경험해보라고 말하곤 하는데, 같은 것이라도 여러 층위에서 바라보고 접하다 보면 사고가 확장되고 창의성이 자극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험이 위험하거나 불필요한 것이라면 절대 행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호기심에라도 해선 안될 것이 있는 법이다.) 우리가 살면서 죽기 전까지 여러 문제들을 마주 할 텐데 그걸 해결하는 능력을 갖느냐 마느냐는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가르치고 깨우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여행은 국내이든 해외이든 우리 자신을 구하면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여행을 가고 싶은데 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여행을 떠올리며 끄적여봤다. 앞으로 여행이 그리워질 때마다 이렇게 생각을 덜어내보고자 한다. '여행의 이유'에 대한 생각과 사고는 여행을 멈추지 않는 한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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